Coding Log


컴퓨터의 역사

초기의 계산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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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00년 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사용했다는 주판 이 최초로 사용된 계산도구일 것이다.

중세에 들어 천체의 움직임을 예측하거나 낮과 밤의 길이를 계산하기 위한 정밀한 계산기가 발명되었으나 용도가 천체 관측으로 한정되었다.

시간이 지나 1623년 독일의 빌헬름 시카르트 가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를 발명하였다. 이 시카르트의 기계식 계산기는 천체 운동을 훨씬 정확하게 계산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 시카르트 계산기의 첫 모델은 제작 도중 화재로 소실되었고, 두번째 모델이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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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9년 뒤인 1642년 블레즈 파스칼 이 기어와 레버를 이용해 10진수의 덧셈과 뺄셈을 하는 파스칼라인 이라는 계산기를 제작했다.

참고 위의 파스칼은 이항계수에 나오는 그 파스칼과 동일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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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년 독일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가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할 수 있는 사칙연산 계산기를 제작하였다.

참고 라이프니츠는 이진법 을 발명하고 평생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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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를 이어 영국의 찰스 배비지 가 1822년 다항 함수, 로그 함수, 삼각함수 등을 계산할 수 있는 차분기관 제작에 도전하였으나 비용 문제로 실패했고, 1835년에 해석기관 이라는 것을 고안하였다.

해석기관은 연산장치, 기억장치, 제어장치, 입출력장치 등 오늘날 쓰는 컴퓨터의 모든 개념이 포함된 기계였지만 당시 기술로는 너무 복잡한 기계였으으로 개발엔 실패하였다.

참고 많은 학자들은 해석기관을 최초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컴퓨터 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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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미국의 홀러리스 가 데이터를 종이 카드에 구멍을 내어 표현하는 천공 카드 시스템을 개발하여 이는 1890년 미국의 인구 조사에서 큰 효과를 내었고, 이후 IBM이라는 회사를 창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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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 이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이 논문에서 정의된 튜링머신 이라는 추상적인 기계가 오늘날 컴퓨터의 동작원리가 되었다.

참고 위에 링크된 앨런 튜링의 논문은 계산가능수와 결정문제에 대한 응용에 관하여 이다.

1937년 미국의 벨 연구소의 조지 스티비츠 가 이진법을 사용하는 최초의 전자식 디지털 계산기를 개발하였다.

컴퓨터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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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인 1939년 선형대수학의 문제를 풀기 위해 아나소프트-베리 컴퓨터가 개발되었다.

참고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는 에니악이 아니라 아나소프트-베리다. (1973년 미국 법원 판결)

참고 The Atanasoff-Berry Computer: The First Electronic Comp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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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독일의 콘라드 추제 가 천공 카드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컴퓨터인 Z3를 개발하였다.
다만 당시 적대관계이던 미국이나 영국 과학자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 Z3는 1943년에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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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영국의 플레츨리 파크에서 앨런 튜링 이 주도한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디지털 컴퓨터 가 개발되었다. 이 컴퓨터의 이름은 콜로서스 로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로 불리기도 한다. 콜로서스의 개발 목적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암호전신기를 깨기 위해 제작되었다.

참고 위키피디아의 앨런 튜링 문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을 보면 앨런 튜링이 독일의 암호전신기를 깰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데 바로 그 기계다. 튜링머신에 관심이 있다면 재밌게 볼만한 영화로 실제 역사와는 조금 다르게 각색된 면이 있다.

참고 실제로는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전신기는 봄베 컴퓨터로 깰 수 있었으며, 에니그마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로렌츠 암호전신기를 깨기 위해 만든 것이 콜로서스다. 1975년 작전명 ULTRA가 기밀 해제되면서 콜로서스의 존재가 대중에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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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미국 하버드 대학의 하워드 에이킨 교수는 IBM 후원으로 전기 기계식 계산기인 마크-I 을 개발하였다. 마크-I은 위에서 배비지가 실패한 해석기관이 실현된 것 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며, 수학이나 과학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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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는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프레스퍼 에커트 와 존 모클리 가 에니악 을 개발하였는데, 에니악은 기계식 계산기보다 1천배라 빠른 처리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처리속도를 이용해 포탄의 궤적을 계산하는 등 군사목적으로 쓰였다. 하지만 에니악은 무게가 30톤, 길이가 24미터, 높이가 5.4미터나 되는 진공관만 18000개의 거대한 기계였다.

참고 당시 에니악의 가격은 50만달러이다. (현재 가치로는 약 70억원)

참고 위키피디아의 에니악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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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해 미국의 존 폰 노이만 이 컴퓨터 내부에 메모리를 저장해놓고 프로그램 명령어들을 차례로 고속 실행하는 프로그램 내장 방식 에 대한 내용이 담긴 에드박에 관련된 보고서를 발표하였고, 이 개념은 현재 대부분의 컴퓨터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참고 위치피디아의 존 폰 노이만 문서

이 프로그램 내장 방식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컴퓨터 는 에드삭 으로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윌키스에 의해 개발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51년엔 폰 노이만을 대표로 미국에서도 에드박을 개발하였다.

참고 에드삭이 실행한 첫 프로그램은 제곱표와 소수 목록 계산이다.

1950년대 이후 컴퓨터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이 시기부터 기술의 발전 단계에 따라 컴퓨터 발전 과정을 세대별로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제 1세대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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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세대 컴퓨터는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회로 소자로 진공관 을 사용하였다.
주기억장치는 자기 드럼 을, 프로그램은 기계어 로 작성하였다.

참고 위키피디아의 진공관 문서

참고 위키피디아의 자기 드럼 문서

참고 위키피디아의 기계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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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에니악을 개발한 에커트 와 모클리 는 1951년 유니박 을 개발하였다. 기존의 컴퓨터들이 과학 분야에서의 사용을 목적으로 개발된 것에 반해 상업용으로 제작된 최초의 컴퓨터 로 미국 조사 통계국에서 사용되었다.

1952년 IBM 701 을 시작으로 IBM이 본격적으로 상업용 컴퓨터를 개발하기 시작 하였으며, 전 세계 컴퓨터 시장을 선점하기 시작하였다.

제 2세대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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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세대 컴퓨터는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회로 소자로 트랜지스터 를 사용하였다.

트랜지스터는 벨 연구소의 존 바딘윌터 브래튼윌리엄 쇼클리 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진공관에 비해 작고 안정적이며 빠르고 가격이 저렴하다 는 특징이 있다.

참고 위키피디아의 트랜지스터 문서

2세대 컴퓨터의 주기억장치는 자기 코어 를 사용했고 기계어 대신 고급 언어인 Fortran, Cobol, Algol이 개발되어 사용 되었다.

참고 포트란 프로그래밍 언어

참고 코볼 프로그래밍 언어

참고 알골 프로그래밍 언어

제 3세대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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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세대 컴퓨터는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집적회로 를 사용하였다.

참고 위키피디아의 집적회로 문서

집적회로는 1958년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의 잭 킬비 가 발명한 것으로 많은 전자 회로 소자가 하나의 기판에 분리가 불가능한 상태로 결합되어있는 회로를 말한다.

참고 잭 킬비는 집적회로의 발명으로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집적회로의 발명은 컴퓨터의 소형화와 더불어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는 데 막대한 영향 을 끼쳤고,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장의 계기 가 되었다.

3세대 컴퓨터의 또 하나의 큰 특징으로 운영체제 를 들 수 있다.

참고 위키피디아의 운영체제 문서

컴퓨터의 작업을 관리하는 운영체제의 등장으로 인해 다중 프로그래밍 과 시분할 처리 가 가능하게 되었다.

3세대 컴퓨터의 대표적은 컴퓨터로 1964년에 발표된 IBM System/360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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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인텔의 고든 무어 가 무어의 법칙 이라 불리는 내용이 포함된 논문을 1965년에 발표한다.

참고 무어의 법칙 : 도체 메모리칩의 성능 즉, 메모리의 용량이나 CPU의 속도가 18개월에서 24개월마다 2배씩 향상된다. (2016년에 무어의 법칙은 깨졌다.)

제 4세대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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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세대 컴퓨터는 집적회로가 더욱 발전하여 하나의 침에 수천 개에서 수백만 개의 전자회로 소자를 집적시키게 되었다.

이는 고밀도 집적회로, 초고밀도 집적회로라고 부르며 이를 통해 하나의 칩으로 된 중앙처리장치인 마이크로프로세서 가 개발되었다.

참고 위키피디아의 마이크로프로세서 문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개발로 개인용 컴퓨터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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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인 인텔 4004 가 개발되었으며 1975년에는 MITS사 대표인 로버츠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인 알테어 8800 을 개발하였다.

참고 알테어 8800은 최초로 상업적으로 판매된 개인용 컴퓨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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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에는 스티브 잡스 와 스티브 워즈니악 이 설립한 애플에서 애플-II 를 출시하여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 애플-II는 사용자들이 스스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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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II의 성공으로 IBM은 개인용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81년 IBM PC 를 발표한다. 이 IBM PC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가 운영체제로 사용되었다.

한편 설계에 폐쇄적이었던 애플-II와 달리 IBM PC는 설계를 공개함으로써 IBM이 아닌 다른 회사들도 IBM PC와 호환이 되는 컴퓨터를 생산함으로써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주도권 을 잡게 되었다.

참고 IBM PC가 현재 쓰이는 PC(Personal Computer)라는 용어의 유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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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애플 리사 가 출시되었고, 1년 뒤 1984년에 매킨토시 가 공개되었다.

참고 지금의 애플이라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애플 리사는 부진을 면치 못했고 땅바닥에 전부 매장해버렸다.

IBM에게 개인용 컴퓨터의 주도권을 뺏긴 애플은 매킨토시 출시를 기점으로 텍스트 기반의 명령어를 수행하는 MS-DOS와 달리 마우스와 그래픽을 이용한 GUI 환경을 제공하여 또 다시 성공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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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삼성전자 가 8비트 개인용 컴퓨터인 SPC-1000 을 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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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매킨토시에서 동작하는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인 엑셀 을 출시한다.

참고 엑셀의 전신은 멀티플랜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MS-DOS에서 멀티플랜은 로터스 1-2-3에게 밀렸고 이에 대한 대항마로 엑셀이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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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3.0 이 출시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대박을 친다.

본격적인 가상 메모리의 도입으로 멀티태스킹 능력이 강화되었으며, 그래픽 카드의 발전으로 당시 기준으로 좀 더 화려한 인터페이스 화면을 제공하였다.

윈도우 3.0의 성공에 힘입어 1992년 윈도우 3.1 이 출시되었다.

참고 여기에 포함된 기본 게임이 바로 지뢰찾기 다!

윈도우 3.1은 매킨토시의 강력한 대항마로써 급부상한다. 이때부터 가격 경쟁에 밀려나간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운영체제 시장 점유율 90%대를 내주게 된다.

참고 여기에서 멈추지않고 윈도우 NT버전을 개발하는데, 이게 또 히트를 친다. 이후 NT버전에 사용된 커널은 XP, 윈도우 서버군, Vista, 7, 8까지 계속해서 버전업되며 쓰이고 있다.

1990년부터 삼성전자에서는 삼성 알라딘 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데스크톱을 출시하기 시작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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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최초의 스마트폰 인 IBM의 사이먼 이 출시되었고, 1993년엔 애플에서 뉴턴 메시지 패드 를 출시하였다.

2년뒤인 1994년 삼성 알라딘은 삼성 매직스테이션 으로 브랜드를 바꾸고 국내 PC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한다.

참고 이후 삼성 SENS로 변했다가 삼성 아티브로 통합된다.

1990년대 중반에 인터넷이 보급됨에 따라 개인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되었고 이 즈음부터 IBM의 호환기종과 애플의 매킨토시가 PC시장을 대부분 차지하게 되었다.

참고 이때 웹 표준을 놓고 브라우저 전쟁이 발생했다. (넷스케이크 vs 인터넷 익스플로러)

1997년 노키아 가 심비안 운영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정립 해나갔다.

참고 2007년 노키아는 전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40%를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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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애플이 최초의 iMac인 iMac G3 를 출시하였다. 그리고 이 iMac G3는 1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애플을 1년만에 4억 달러 흑자로 바꿔놓는다.

참고 물론 애플 내부의 구조조정과 제품 라인을 줄여서 적자가 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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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림사가 블랙베리OS 로 스마트폰을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지속적인 기술의 발달로 2000년에 CPU의 클럭은 20MHz에서 1GHz에 도달한다.(500배 상승)

2001년 매킨토시 운영체제가 새로 개편되어 맥의 OS X 가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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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애플의 iMac G4 가 출시되었는데 디스플레이에 LCD가 적용되었다.

참고 iMac G4가 바로 호빵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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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최초의 64비트 PC인 PowerMac G5 와 AMD64 가 등장했다.

2007년엔 제 2차 브라우저 전쟁 이 발발한다.
1차 브라우저 전쟁이 웹 표준에 관련된 것이었다면 이번엔 점유율에 관련된 것으로 WebKit 계열인 구글의 크롬, 모질라의 파이어폭스가 익스플로러를 견제 하게 되었다.

참고 이 시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최소한의 성능만을 가진 넷북이란 장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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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2007년 애플에서 스마트폰의 개념을 재정립하며 아이폰 을 출시한다.

참고 아이폰 1세대 출시를 알리는 키노트 문구는 "애플, 전화기를 재발명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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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애플에서 MacBook Air 를 출시하며 제조업체들의 가벼운 노트북 경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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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알루미늄이 적용된 현재 보급된 형태의 iMac 이 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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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삼성전자에서 삼성 옴니아 를 출시하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2011년부터 쿼드코어 CPU가 보급 되기 시작하였다.

2012년에 애플에서 New iMac 이 출시되었고 두께가 더더욱 얇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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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스마트폰 OS 시장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와 애플의 iOS 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참고 안드로이드 65.56%, iOS 19.03%

이후 컴퓨터 시장은 좀 더 빠르게, 좀 더 가볍게, 좀 더 저렴하게 제품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게 되었다.

추후 인공지능의 발달 혹은 양자 컴퓨터의 개발로 제 5세대 컴퓨터가 등장하길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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